이사온 집에는 그전보다 햇빛이 잘 들어 화분이 쑥쑥 자란다. 늦여름 햇볕을 잔뜩 쐰 식물이 많이 자랐다. Paper라는 아이패드앱 위에서 손가락으로 쓱쓱 그렸는데, 손으로 그렸지만 발로 그린 그림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만해 보이는 결과가.

이사온 집에는 그전보다 햇빛이 잘 들어 화분이 쑥쑥 자란다. 늦여름 햇볕을 잔뜩 쐰 식물이 많이 자랐다. Paper라는 아이패드앱 위에서 손가락으로 쓱쓱 그렸는데, 손으로 그렸지만 발로 그린 그림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만해 보이는 결과가.

이제는 뒷자리 네 개만 기억나는 번호를 붙들고 술에 취해 제자리를 짚지 못하는 손가락으로 전화를 건다. 모르는 목소리들이 피곤한 기색으로 잘못 거신거라고 대답해주는 순간이 한 번, 두 번 지나고 나면 문득 알게된다. 너를 만나고 싶어서 전화를 건 것은 아니었음을. 듣고 싶은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고통이 달콤하다는 것을. 그게 너무 달아서 여전히 번호는 잘못 눌러지고 있다는 것을.

대학시절에 쓴 리포트를 떠올려본다. 교수 자리에 앉아 있는 어떤 화자. 끊었던 담배를 피우러 베란다에 나와 까만 하늘을 바라본다.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면 가로등 하나가 짧은 시간 눈부시게 빛나고, 어둠 속의 빛이 눈에 익을 즈음 가로등 아래 입을 맞추고 있는 남자와 여자가 보인다. 어린 아이들의 사랑을 먼 곳에서 엿보는 동안 담배는 조용히 저 혼자 타들어간다. 그리고 거실 쪽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잠깐의 감상을 허락치 않는 채근의 목소리일 수도, 혹은 센티멘털하게 내리는 빗속에 갇힌 남편을 끄집어내는 소박한 구원의 목소리일 수도.

다른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조차 죄였던 시절은 이제 모두 꿈처럼 지나가버렸다. 영국 유학을 떠나는 선배와의 술자리 끝에 뜨거워진 볼을 한 채로 컴퓨터 앞에 앉아 쓴다. 니가 보고 싶다. 하지만 나는 차를 몰고 있다. 유턴할 수 없다. 차르륵 지나가는 차선을 보며 다시 생각한다. 나는 니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다고. 사변적인 생각이 머리 속을 어지럽힌다. 라디오를 켠다. 노래가 흘러나온다. 흘러나오길 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